밀양 표충사(表忠祠)는 임진왜란때 의승장으로 활약한 사명당 유정을 주향(主享)으로 청허당 휴정과 기허당 영규를 배향(配享)하는 사당으로, 영조 14년(1738)에 사액을 받아 유교식 제향절차에 따라 춘추로 향사를 지내왔다. 밀양 표충사가 유정을 주향으로 스승인 휴정을 배향하자 해남 대둔사 승려들이 휴정을 주향으로 하는 사당의 건립과 사액을 요청해 정조 12년(1788)에 해남 표충사도 사액을 받아 밀양 표충사의 예에 따라 춘추제향을 지냈다. 밀양 표충사에는 춘추제향과 관련하여 각종 공문서와 자료들이 일부 남아있으며, 해남 대흥사와 용흥사에도 표충사 향사와 관련한 자료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자료는 불교사찰 내에 위치한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의 춘추제향에 대한 역사와 설행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두 표충사의 제향은 유교 서원의 제향절차를 따랐으므로 일반 서원 제향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제향의 대상이 승려고 사찰내에 표충사가 있어 어육(魚肉)을 사용하지 않았고, 술 대신에 차(茶)로 대신했다. 표충사가 사액서원이고 유교식 제향을 지내는 곳이니 당연히 모든 집사와 집례를 유생들이 담당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유교식 제향을 지낼 뿐 모든 집사와 집례를 승려들이 맡았다. 향사의 특별한 직위와 역할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유명한 서원의 경우 향사 참례 자체가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한 서원 내에서 집사의 위계를 단계별로 올라서 보다 격이 높은 서원에 초대를 받고 집사의 직임을 수행하게 된다. 집사의 분정은 나이와 경륜을 고려하여 정하는데, 관작의 고하, 나이순 등 유교 이데올로기가 나타나고 이를 따른다. 표충사의 중요한 직책은 원장, 도총섭(종정), 도유사, 주관유사, 도승통이 있었다. 원장은 서원의 우두머리며, 도총섭은 춘추향사를 총괄지휘하며, 도유사는 실질적으로 제향을 집행하며, 주관유사는 의식을 총괄하고 주관하며, 도승통은 향사를 원활히 치를 수 있도록 승려들을 통솔했다. 밀양 표충사의 경우는 ‘원장→주관유사→도총섭→도유사→도승통’의 위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해남 표충사의 경우는 ‘원장→도총섭→도유사→주관유사→도승통’의 위계를 가지고 있음이 다르다.